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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다] "손잡고 웃었어도 성폭행"…법원이 판단한 웃음의 의미

모질라 0 28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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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21)씨는 지난 2017년 1월 26일 포장마차에서 만난 여성 A씨를 인근 건물 3층 옥상으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심은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범행 직후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옥상을 내려가는 장면과 여성이 웃는 모습이 담긴 건물 폐쇄회로(CC)TV 영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집에 들어온 A씨가 김씨와 웃으면서 통화하는 내용의 녹음 파일도 재판에 증거로 제출됐습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이를 뒤집고 김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사건 당시 A씨의 행동에 대해 "사회통념상 강간 피해를 당한 직후의 여성의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제12형사부(재판장 홍동기)는 “사회통념상 강간 피해를 당한 직후의 여성의 행동으로'보기 어렵다고 할 수 없다'”며 1심의 판단을 뒤집는 문구를 판결문에 4번이나 반복해 적었습니다. 같은 행동에 대해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단이 극명하게 갈렸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서로 호감 있었지만…“옥상에서 맘 바뀌어”



이 사건의 특이한 점은 가해자로 지목된 김씨가 옥상에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는 “옥상으로 올라가고 스킨십을 했던 건 기억나는데, 이후부터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이후 집으로 가는 택시에서부터 기억이 난다”고 증언했습니다. 따라서 1심에서는 A씨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는 것 위주로 재판이 진행됐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가 술집을 나와 김씨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간 건 자발적이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처음에는 (김씨에 대해) 나쁘게 생각을 안 했고, 나가서 (술을) 같이 더 마실 생각도 있었다” “당시에는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옥상에 이르자 A씨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당시는 추운 겨울인데다가 옥상의 시멘트 바닥은 차갑고 거칠었습니다. 그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김씨가 피임도구도 사용하지 않으려 해 성관계를 거절했다. 그러자 그가 거친 말을 하며 나를 강제로 눕혔다”고 수사 기관 및 법정에서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1심은 A씨가 김씨에게 배려를 받지 못하자 돌변한 것이라 봤습니다. 재판부는 “A씨가 사건 당시 김씨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김씨가 성관계를 시도한 것 자체보다 배려 없이 성관계를 시도한 것에 대해 더 큰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반면 2심은 김씨에 대한 호감을 솔직하게 밝힌 A씨의 태도가 오히려 진술의 신빙성을 높여준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A씨가 자신에게 다소 불리하게 보일 수 있는 부분까지 가감 없이 솔직하게 진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김씨를 무고할 만한 동기가 있다고 볼 만한 어떠한 자료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김씨가 전체 과정 중 중 ‘그 순간’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워, 오히려 가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손 잡고 웃은 행동, 납득할 수 없다” 본 1심
성폭행 피해자가 범행 직후 가해자와 손을 잡고 웃을 수 있는가. 이 사건에서 가장 큰 논쟁을 부른 부분입니다.

이에 대해 A씨는 법정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옥상을 나온 후 혼자 ‘어떻게 빠져나갈까’ 궁리를 하고 있는데 김씨가 자신을 꽉 잡고 있어서 일단은 그대로 내려갔다는 겁니다. 이후 김씨로부터 빠져나갈 틈을 보다가 택시를 잡았지만 김씨가 밀고 들어와서 억지로 함께 타고 집 앞까지 함께 가게 됐다는 게 A씨의 설명입니다. 이후 “할머니가 계시다”는 등 핑계를 대고 김씨를 보낸 뒤 A씨는 집에 들어왔습니다.
범행 과정에서의 웃음이나 통화하면서 웃은 것에 대해서도 A씨는 “너무 화가나고 허탈해서 헛웃음을 지은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A씨의 행동이 “사회통념상 강간 피해를 당한 직후의 여성의 행동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가 이 같은 행동을 할 만한 이유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이 부족했다고 지적했고, 결국 A씨의 진술이 과장됐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또 만일 피해자가 진짜로 헛웃음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오히려 가해자에게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허탈해서 웃을 수도 있다” 본 2심
2심 재판부는 정반대의 판단을 내놨습니다. 강간 피해를 당한 직후의 여성도 충분히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먼저 손을 잡은 데 대해선 “피해자가 사건 발생 장소나 가해자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다소 순응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A씨의 ‘웃음’도 그 자체로 호의적이거나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라고 봤습니다. “A씨의 웃는 소리가 소름끼치고 귀신 소리 같았다”는 김씨의 진술은 상대에 유리한 근거가 됐습니다. 전문심리위원이 “A씨가 1심에서 패소하고도 (포기했다는 취지로) 웃었을 정도로 체념할 때나 당혹스러울 때 습관적으로 웃는 특성을 가졌다”고 분석한 내용도 판결에 반영됐습니다. 웃음의 종류가 여러 가지여서 성폭행 피해자도 웃을 수 있다고 본 겁니다.

당일 오간 통화에 대해서도 1심은 “웃으면서 통화할 이유가 없다”고 본 반면 2심은 “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김씨가 다음 주에 시간 있냐고 묻자 계속 모른다며 대답을 회피하는 것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폭행 유무’도 다르게 판단…“충분히 위협 느껴”

A씨는 김씨에게 싫다는 의사를 밝힌 뒤에는 격렬히 저항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초반에 김씨를 계속 밀쳐냈지만 힘이 부쳐 더 이상 반항하기 힘들었다는 겁니다.



1심은 김씨가 여성으로부터 성관계에 대한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건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 강간죄가 성립되기에는 미흡하다고 봤습니다. 현행법상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1심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의 거부에도 김씨가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곤란하게 할 정도로 폭행, 협박하여 간음한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문에 적었습니다.

반면 2심은 1심 재판부가 섣불리 단정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만일 A씨가 계속 반항할 경우 김씨가 어떤 위해를 가할지 알 수 없어 몇번의 반항 이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 겁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를 직접적으로 가격하거나 협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렀으므로, 이는 강간죄의 성립에 필요한 폭행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 중시하는 법원…“가해자 방어권과 균형 찾아야”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판결문에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처한 상황 때문에 대처가 자연스럽지 않을 수 있어 함부로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하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지난해 대법원이 한 성추행 판결에서 이에 대해 언급한 뒤, 일선 법원에서는 성폭력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판단의 한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논란도 거셉니다. 성폭력 사건에서 무고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진술만 중시하다 보면 억울한 가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겁니다. 특히 이 사건의 경우 김씨 측이 재판 결과에 대해 “억울하다”며 즉각 상고한 상태여서 대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기까지 더 지켜봐야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성인지 감수성’이 새로운 개념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는 건 이전부터 적용되어 왔던 기준이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건 사법부가 양 측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는 거라고 강조합니다.

최주필 변호사(법무법인 메리트)는 “성인지 감수성은 무조건 피해자의 진술만 우위로 치자는 게 아니라 사건의 맥락과 정황들을 꼼꼼히 심리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가해자의 방어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신진희 변호사(법률구조공단 피해자 국선 전담)는 “‘감수성’이란 표현 때문에 판사가 감정적으로 한쪽 편만 든다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며 “안 그래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많은 상황에서 당사자 양 측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잘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판다’는 ‘판결 다시 보기’의 줄임말입니다. 중앙일보 법조팀에서 이슈가 된 판결을 깊이 있게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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